[무릎 재활 일기] EP. 1 스포츠 경기 중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지다.
내 나이 30대 중반...많다면 많은, 적다면 적은 나이...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수술이란 걸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에게 적잖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무릎 부상 및 수술 과정,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재활 과정에 대한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여기에 남겨 보려고 한다.
부상을 당한 순간부터 재활에 이르는 과정까지 가감없이 써 나갈 예정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양지해 주길 바라고, 이 재활일기가 나와 같은 손상을 당하여 조언을 구할 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록하는 것임을 사전에 밝히며 글을 시작하겠다.
EP. 1 축구 경기 중 무릎이 돌아가다.
2024년 5월 11일... 살면서 나에게 가장 큰 부상을 안겨 준 날로, 아마 죽을 때까지 그 당시 상황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날은 회사에서 주관하는 축구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당시 태어난 지 약 두 달이 안 되는 딸을 양육하기 위해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그 축구대회에 너무 나가고 싶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나보다 더욱 힘든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대회 시작 며칠 전까지 축구의 'ㅊ'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참가 의사를 팀에 밝힌 터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내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고,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만 보내다 '이제는 진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대회 이틀 전 힘겹게 운을 뗐지만 역시나 아내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그 때 나는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하였던 나는 아내의 의견을 받아 들이고 집에서 얌전하게 육아를 하는 것이 아닌 설득이라는 선택을 하였다. 결국 나는 아내로부터 'YES'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었고, 대회 당일 오랜만에 축구를 한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운동장에 도착했다.
하루 만에 예선부터 결승까지 진행되는 타이트 한 일정의 대회였고, 선발이었던 나는 모든 경기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내가 속한 팀은 오전 7시에 첫 경기가 있었고, 바로 이어 8시에 두 번째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에 나는 경기를 할 운동장 잔디의 상태에 따라 바꿔 신을 요량으로 풋살화와 축구화 모두를 챙겨 갔었는데, 평소에도 거의 웬만해선 축구화를 잘 신지 않았기에, 그 날도 아무 생각없이 풋살화를 먼저 신었다.
그런데 신발끈까지 다 묶고 운동장으로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잔디가 너무 길어서 축구화 신어야 할 거 같은데?"
당시 그 말을 누가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누군가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무심결에 그 말을 들은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축구화로 바꿔 신었다. 그리고 팀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경기는 무탈히 잘 지나갔다. 오히려 오랜만에 축구화를 신어서 그런가 플레이마저 잘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시작된 두 번째 경기, 경기 시작 후 10여분이 지날 때까지는 여느 때와 같이 공을 찼다.
하지만 얼마 뒤 왼쪽 무릎이 돌아감과 동시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부상을 당하였을 당시 내가 하고자 했던 동작은 2024년 11월 14일에 있었던 대한민국과 쿠웨이트의 경기에서 팀에 세 번째 득점을 안겨 주었던 배준호 선수의 득점 장면과 유사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우리편으로부터 패스를 받은 나는 나를 향해 달려 오는 상대편 수비를 제치고자 앞으로 가는 척 모션을 주고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뒤로 뺀 뒤 슛을 하고자 하였는데, 오른발로 공을 빼는 과정에서 골대 쪽을 향해 있던 왼발이 땅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고, 왼발이 땅에 박혀 있는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사전에 생각했던 대로 볼을 컨트롤하고자 몸을 골대 방대 방향으로 틀었다.
바로 그 때 미처 돌지 못한 왼쪽 무릎 아래와 이미 돌아버린 무릎 위 사이에 과회전이 발생하였고, '뚝'하는 파열음과 함께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당시 상대편 등과 어떠한 물리적 접촉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그냥 혼자 '쑈를 하다' 넘어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자 심판이 경기를 멈추고 나의 상태를 물었다. 쥐가 나거나 발목이 삐는 정도의 경미한 부상이었다면 아마 나는 잠시 밖에서 쉬다 경기에 다시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웬걸...손상을 입은 왼쪽 다리로 걸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디딜 수는 있지만, 걷기 위해 힘을 주거나 압력을 주면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같은 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운동장을 나왔다.
이후 손상 부위에 파스를 뿌리고 남은 경기를 지켜보며 휴식을 취했다. 아마 나는 그 때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크게 다쳐 본 적이 없는 데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한 느낌마저 들었기에 인대가 파열된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안일하게 김밥과 커피 등 간식까지 먹으며 팀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팀원들과 함께 운동장을 떠났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타니 무릎 주변이 조금 시린 거 같기도 하였지만, 아내의 반대를 무릅 쓰고 나온 대회였기 때문에 절대로 아픈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평소와 같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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